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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쿄 거리를 걷다 보면 분명히 뭔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외국인 관광객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2023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 수가 4,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역대 최고를 찍었고, 이들이 쓴 돈만 해도 9.4조 엔, 우리 돈으로 85조 원이 넘는다. 숫자도 숫자지만, 진짜 흥미로운 건 여행자들이 도쿄에서 뭘 하느냐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시부야 하면 하치코 동상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스크램블 교차로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요즘 외국인들이 찾는 곳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안경점에 줄을 서고, 편의점 주먹밥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됐다.

일상의 속도가 관광 상품이 되다

하라주쿠에 있는 안경 브랜드 조프(Zoff)에 외국인이 몰리고 있다. 외국인 고객이 전년 대비 180%나 늘었다고 하는데, 이유를 들으면 납득이 간다. 자기 나라에서는 안경 맞추는 데 몇 주씩 걸리는데, 여기선 검사부터 완성까지 딱 30분이면 된다는 것이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보니 유튜브나 틱톡에서 "도쿄 가면 안경 꼭 맞춰봐라"는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를 찍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일본의 서비스 속도와 정확도는 오래전부터 유명했는데, 그게 이제 하나의 '관광 자원'이 된 셈이다. 효율성 자체를 경험하러 오는 관광객이 생겨난 거다.

스시를 넘어선 새로운 '소울 푸드'

먹거리 트렌드도 확 바뀌었다. 도쿄 하면 스시, 라멘이라는 공식이 오랫동안 굳어져 있었는데, 요즘 시부야 거리에서 외국인들이 제일 많이 손에 들고 다니는 건 오니기리(주먹밥)다. 편의점에서 파는 그 오니기리 맞다.

처음엔 신기해서 사 먹어보는 거겠지 싶었는데, 이게 SNS에서 퍼지면서 외국인들 사이에서 진짜 '일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덕분에 매장들도 발 빠르게 움직여서 스파이시 참치 마요 같은 세계인 입맛에 맞춘 메뉴를 내놓고 있다. 오니기리가 스시의 자리를 위협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매장이 문화 해설사가 되는 시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할도 달라졌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지원하는 키오스크나 자동 측정 장비를 들여놓는 건 기본이고, 면세 처리와 국제 배송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해주는 곳들이 늘었다.

흥미로운 건 직원들이 단순히 물건을 팔고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니기리 가게에서는 "오니기리는 스시랑 달라요. 와사비도 없고 초생강도 없어요"라고 설명해준다고 한다. 외국인 손님이 스시처럼 생각하고 잘못 기대할 수 있으니까. 물건 파는 곳이 문화 해설까지 해주는 셈인데, 그게 오히려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도쿄는 이제 그냥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나한테 딱 맞춰진 서비스를 즐기는 소비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시부야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 도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관광객 증가로 보기엔 좀 더 근본적인 것 같다. 일본 특유의 꼼꼼한 서비스 문화와 소셜 미디어가 만나면서, 도시 자체가 전 세계 여행자들을 위한 '체험 플랫폼'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엔저 덕분에 지갑도 열기 쉬워졌으니, 이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구경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직접 해보고 느끼는 여행으로 도쿄가 진화하고 있다. 다음번 도쿄 여행에선 안경 하나 맞춰오고, 오니기리 몇 개 먹어보는 게 필수 코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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